3월 10일 주일설교 

전문

눅 7:36-50 뜨거운 눈물에 담긴 사랑

240310 주일설교

설교 : 김도완 목사


1. 뜨거운 신앙의 비밀

고구마전도왕으로 유명한 김기동 목사님이 회심한 사건은 교통사고였습니다. 주일아침에 교회가자는 아내와 딸들에게 하루만 놀자고 억지를 부려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음주운전차량과 정면충돌하여 온 가족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간 경험 후 헌신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전도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여러 교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한 교회에서 간증집회를 마친 후 어느 권사님이 와서 그러더랍니다. "아이고, 저도 집사님처럼 좀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고 전도도 하고 싶은데 모태신앙인 저는 평생 미지근한 신앙생활만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좀 뜨겁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농담처럼 답했답니다. "권사님도 정면충돌해보세요. 뜨거워집니다."

이 권사님처럼 미지근한 신앙생활로 인한 고민을 안해본 신앙인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더 뜨겁고 진실하고 바르고  제대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섬기는 신앙생활은 할 수 없을까?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을까? 오늘 본문말씀은 우리의 신앙이 왜 미지근한지, 어떻게 하면 뜨겁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2. 미지근한 신앙

본문은 예수님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벌어진 일입니다. 어느 죄지은 여자가 예고없이 들어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는 돌발행동을 하는 바람에 몹시 당황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시몬과 여자는 모두 예수님을 섬기지만 그들의 섬김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사뭇 다릅니다. 먼저 시몬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매우 박합니다. 시몬은 어떻게 예수님을 섬겼습니까? 7장 17절을 보면 예수님의 소문이 유대와 사방에 널리 퍼졌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시몬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습니다. 이를 보면 시몬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이었던 다른 바리새인과 달리 열린 마음과 호감, 호기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의 섬김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의 섬김은 정중했지만 진실과 헌신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에서 드러납니다. 44절 이하입니다. 

(눅 7:44) ... "...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 

귀한 손님에게는 종을 붙여 발을 씻깁니다. 맨발로 얇은 샌들을 신고 다니던 당시에 발은 항상 더러웠고 늘 아팠습니다. 그런 이에게 식사 전에 발을 깨끗히 씻기고 주물러 피로를 푸는 것은 극진한 호감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섬김의 본을 보이시려 최후의 만잔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은 종들을 시켜 예수님의 발을 씻기지 않았습니다. 

(눅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 

입맞추는 것도 오늘날에도 접촉문화로 분류되어 스킨십이 많은 중동에서는 반갑거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기쁨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에게 입맞추지 않은 것은 오늘날 마치 손님이 왔는데 의도적으로 악수를 청하지도 않은 것보다 훨씬 거리를 두는 태도였습니다. 

(눅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

머리에 향유를 붓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향수를 뿌리는 것과 유사합니다. 무덥고 물이 부족한 건조기후대에서 오늘날처럼 수시로 샤워를 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머리와 몸에서 항상 땀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식사자리에서 부자들은 땀냄새를 지우도록 비싼 향유를 조금씩 머리에 붓고 했습니다. 그 향유를 시몬은 예수님에게 부어주지 않은 것을 여자의 섬김과 비교해 예수님은 '싼 감람유도 붓지 않았다'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는 시몬이 그만한 비싼 것을 드릴 만큼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시몬은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 의심합니다. 이는 그의 생각에서 드러납니다. 

(눅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자신의 발을 만지는 이 여자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 더러운 여자라는 것을 모른다면 이 사람은 선지자일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3. 미지근한 이유

그러나 그의 생각까지도 예수님은 이미 다 아시면서 왜 그가 이런 진실과 헌신이 없는 미지근한 섬김을 할 수밖에 없는지를 비유와 질문을 통해 밝히십니다. 하루 품삯인 데나리온을 오십 빚진 이와 오백 빚진 이가 모두 탕감받았다면 누가 더 탕감해준 주인을 사랑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당연히도 더 큰 빚 오백 데나리온을 탕감받은 자입니다. 반면 작은 빚을 탕감받은 자는 주인을 덜 사랑할 것입니다. 덜 사랑하는 이가 바로 바리새인 시몬입니다. 그가 빚진 데나리온은 바로 죄의 빚입니다. 바로 이것이 시몬의 섬김이 미지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는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바리새인입니다. 물론 실제 의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롭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그러니 용서받아야 할 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죄사함과 구원의 메시지가 그에게는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용서받아야 할 죄가 있어야 죄사함이 고맙지 않겠습니까? 배고픈 사람에겐 빵 하나도 고맙지만 배가 부른 사람에게 진수성찬도 전혀 고맙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로움으로 충분히 구원받을 수 있는데 예수님의 사죄의 선언이 그리 감격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섬김도 미지근한 것입니다. 그의 영적 상태를 47절이 정확히 묘사합니다. 

(눅 7:47) "...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의롭다고 여기지 않는데요? 자신의 죄 때문에 비참함과 절망과 심판의 두려움을 느껴보지 못 했다면 죄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고 이는 곧 자신에게 큰 문제가 없다 곧 의롭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자연인으로서 이런 죄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 합니다. 그런 이에겐 예수님은 '섬겨야 하는' 분이기는 하나 절박하게 꼭 그 분만을 섬겨야 할 분은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피흘림이 자신의 죄를 위한 것임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혹시 이 시몬의 모습이 여러분의 이야기는 아닙니까? 


4. 뜨거운 이유

뜨거운 신앙의 이유도 여기서 드러납니다. 오백데나리온, 당시 서민들로서는 평생 죽어라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거액, 틀림없이 그와 그 아내와 아이들을 종의 신분으로 팔리게 만들고도 남을 뿐 아니라 대대손손 값을 가망이 없어 영원히 비참하게 종살이를 하게 만들었을 거액을 탕감받은 이는 주인을 어떻게 사랑할까요? 틀림없이 감사감격하여 자신의 손과 발이 닳아도 죽도록 사랑하고 섬길 것입니다. 자신을 비참한 인생이 되게 할 뿐 아니라 영원히 멸망시킬 큰 죄를 사함받은 사람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시 47절입니다. 

(눅 7:47) "...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그의 많은 죄가 사함받은 것은 그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바로 미지근한 시몬에게 눈총과 멸시를 받은 죄많은 여인입니다. 당시 팔레스틴의 집들은 옛날 한국의 시골집처럼 열린 구조였습니다. 잔치라도 벌어질라치면 동네사람 누구나 드나들 수 있었기에 그녀는 어렵지 않게 식사자리까지 접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목적은 틀림없이 자신의 전재산이나 다름없이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는 것이었습니다. 온동네 사람이 아는 죄 지은 여자는 몸파는 여자이거나 혹은 부정한 일을 저지른 여자를 가리킵니다. 엄격한 도덕율이 지배하는 작은 마을공동체에서 그녀는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녀는 틀림없이 예수님의 앞선 사역에서 죄사함의 메시지를 들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죄짓는 현장에서 잡혀와 돌에 맞아죽을 뻔 하던 여인을 예수님이 구해주시고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해주셨던 말씀을 그녀도 들었을 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시몬의 집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두 번도 생각지 않고 그녀가 주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신이 가진 가장 비싼 것 향유옥합을 들고 달려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예수님의 발치에 섰을 때 돌발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본 그녀의 눈에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오더니 뚝뚝 떨어져 예수님의 발에 떨어진 것입니다. 당황한 사람이 엉뚱한 생각을 종종 하듯 닦을 것을 찾지 못 한 그녀는 어쩔 줄을 몰라 급히 몸을 굽혀서 자신의 긴머리를 풀어 그 발을 닦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정결한 사람들이 하듯 입맞추어 인사할 자격도 없는 자신은 그 분의 발에라도 입맞추어 주님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거듭거듭 예수님의 발에 입맞추던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예수님의 발이 부정해졌을까봐 들고온 향유를 그 발에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뜨거운 신앙의 비밀입니다. 자신의 크고 무섭고 절망적인 죄를 깨닫고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쏟아 죄값을 치르고 영원히 구원하신 예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오직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이 특별한 은혜를 입어 죄사함의 은혜를 깨달은 이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 없습니다. 어떤 눈총과 비난과 멸시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죄사함의 은혜를 깨닫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뜨거운 사랑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모르는 시몬과 함께 앉은 바리새인들은 그녀의 행동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그저 편협한 율법이해와 자기의로 똘똘뭉친 교만으로 모두를 정죄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올 자격이 없는 더러운 여자가 무례한 행동으로 품위있는 식탁을 망친다는 생각에 불쾌할 따름이며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듯 꾸짖지 않고 받아들이는 예수님의 정체까지 의심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선하신 주님은 그녀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긍휼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시고 죄사함과 평안을 선포하셨습니다. 

(눅 7:48) ...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 (눅 7:50)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

이런 죄사함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음으로 참평안을 누리는 것이 성도의 최고의 행복입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깨닫는 성도에겐 감당할 수 없는 사랑과 감사가 폭포수처럼 하늘에서 그 영혼에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런 성도는 사랑이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눈물로 쏟아져나옵니다. 가장 비싼 향유조차 아깝지 않은 헌신을 드립니다. 주님의 발에라도 입맞추기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수치와 고난도 두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입니다. 온전한 사랑이신 주님을 온전한 사랑으로 섬기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습니다. 어떤 부귀영화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이런 온전한 사랑을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히 영원토록 부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